여행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얻고 배우게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기이함을 맛보게 하고, 역사를 이해하게 만든다. 다른 문화를 경험하며 더 넓은 지식을 갖게 한다. 쉼을 경험하기도 하고 삶에 대한 새로운 조망을 하게 한다. 인생의 목표와 사명을 생각하고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여행은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도 한다. 특별히 성지순례는 우리에게 감동과 함께 인생의 새로운 결단을 갖게 한다.
오래 전 여러 성도님들과 함께 간 성지순례는 그러한 여행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모든 사람이 순간순간 감동하며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런데 여행의 양념과 같은 쇼핑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재래시장을 방문한 우리 일행은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보지 못했던 신기한 물건들을 만나기도 했고,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격으로 좋은 물건을 살 수도 있었다. 구하고 싶었던 물건을, 그것도 아주 싼 가격에 살 수 있게 되면 쇼핑은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우리 모두는 정말 즐거운 쇼핑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쇼핑을 끝내고 일행을 다시 만났을 때다. 어떤 사람이 똑같은 물건을 자신보다 싸게 산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쇼핑으로 즐거워하던 모습이 갑자기 변해 분노하기 시작했다. 계산을 해 보니 단지 몇 천원 더 자신이 비싸게 산 것이었다. 한국의 가격과 비교하면 몇 만원이나 싸게 샀는데도 그렇게 기뻐하고 좋아하던 모습이 돌변하여 화가 난 모습이다.
이렇게 비교하는 것은 우리를 화나고 분노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비교해서 얻는 상대적 행복을 기다리고 있다. 더 많은 것, 더 큰 것, 더 높은 것, 더 대단한 것을 기대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복은 비교해서 얻는 상대적 복이 아닌 절대적 행복이다. 상대적 행복을 포기하고 절대적 행복을 경험해야 한다.
나는 독립된 자유인으로서 나름대로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나는 상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걸작이다. 상품은 비교하는 것이지만 걸작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다빈치의 그림과 고흐의 그림은 비교할 수 없다. 각각 고유한 특징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장미와 이름도 잘 모르는 야생화를 비교할 수 없다. 누가 일방적으로 장미가 예쁘다고 할 수 있는가?
나는 다른 사람과 비교될 수 없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최고의 브랜드다. 이제 비교의식을 포기하자. 열등의식을 제거하자. 비교의식으로 살기에 우리 안에 박힌 못을 빼야 한다. ‘못한다, 못 살겠다, 못 해먹겠다’ 에서 못을 빼서 ‘할 수 있다, 살겠다, 하겠다’로 살아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작품, 하나님의 최고의 브랜드다. 나는 나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기대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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