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방영된 인기 드라마 중 ‘임금님의 첫사랑’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조선왕조 말기의 철종 시대를 배경으로, 역사적 사실을 극화한 드라마인데 주인공인 ‘강화도령 철종’의 사랑이야기다. 대원군이 집권하기 직전 조선왕조는 왕실의 기강이 무너지고 세도정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다.
헌종의 뒤를 이을 왕족이 없어졌다. 조선이라는 왕정국가에서는 왕이란 곧 나라 그 자체였으므로, 왕이 없다는 것은 나라의 존립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왕족의 핏줄을 찾고 찾다가 결국 강화도령 이원범을 만난다. 그리고 강화도령은 하루아침에 한 나라의 주인이 된다. 그가 어찌 꿈엔들 상상했을까? 그러나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한 개인으로 볼 때 이러한 인생역전이란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로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왕이 된 강화도령의 마음에 행복이 없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 모든 것을 전부 다 가진 왕, 그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강화도 시골구석에 두고 온 사랑하는 시골처녀 때문이었다. 왕의 마음은 전부 그 처녀에게 향해 있었다. 그 처녀가 보고 싶어 하루도 마음을 잡을 수가 없다. 왕실 안에는 어여쁜 여인들이 많이 있다는 신하들의 말도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두고 온 여인을 향한 ‘임금님의 사랑’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애절하게 한다.
왜 이 이야기를 주목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여인은 교회다. 에베소서에는 교회를 설명하기를 ‘부활하신 왕, 그리스도를 충만하게 만드는 존재’, 그것이 바로 ‘교회’라고 말한다. 이것은 실로 굉장한 의미다. 교회는 왕을 충만하게 만든다. 무슨 말인가. 쉽게 말하면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도 ‘교회’라고 하는 ‘사랑하는 여인’이 없으면 스스로 행복해하지 않으며 스스로 충만하지 않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여인의 독보적인 위상을 보라.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겉으로 볼 때 교회는 시골처녀와 같이 볼품없고 대단하지도 않다.
그러나 어쩌랴. 그 왕은 시골처녀에게 마음이 다 빼앗겨 있는 것을. 마치 신데렐라에게 마음이 빼앗긴 왕자와 같이, 우리 왕은 교회를 향하여 마음이 전부 다 빼앗겨 계신 것이다. 영광의 왕, 그 왕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존재가 교회라니! 이것이 눈부실 정도로 찬란한 교회의 독보적인 위상이다.
소명이 희미해지고 사역으로 심신이 지칠 때마다 나는 항상 이 자리로 돌아온다. 이것만 생각하면 교회를 섬기는 나의 작은 고생이 결코 억울하지 않다. 아니 황송하고 송구스러울 정도로 감사하다. 어지러운 시대, 세상이 교회를 비방하고 흔들어도 낙담치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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